강화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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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관의 강화동종
강화역사관의 강화동종
강화역사관의 강화동종
강화역사관의 강화동종
고려궁지 강화부종각
고려궁지 강화부종각

개관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강화역사관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동종으로 보물 제11-8호이다.

이 종은 조선 숙종 14년(1688)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녹여서 정족산성에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 종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스님 사인비구에 의해 만들어진 사인비구주성동종(보물 11호) 8개 중 하나이다. 사인비구는 전통적인 신라의 종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가해 새로운 종을 만들었는데, 전해지는 작품이 모두 보물 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이 몸을 얽힌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고 그 아래에 종을 매달기 위한 공간이 있다. 윗면은 둥글며, 어깨에는 비스듬히 나온 턱이 있는데, 고려시대 동종에서 혼히 발견되는 입화형(立花形)이 퇴화된 것이다. 어깨에서 떨어진 곳에 꽃무늬로 장식한 4개의 유곽이 있고, 그 안에 연꽃 모양의 돌기가 9개씩 들어있다. 몸체의 가운데에는 가는 윗띠와 굵은 아랫띠를 돌려서 몸체를 위 아래로 구분하였다. 가운데 옆띠 아래에는 종을 처음 만들고, 다시 고쳐 만든데에 대한 기록이 양각 되어있다.

특징

우리나라 전통적인 종 과는 달리 맨 아래에 넓은 꽃무늬 띠를 돌린 것이 특징이다. 종을 만든 기록이 종의 아랫부분에 에 나타나 있지만, 어깨부분의 퇴화된 입화형 장식, 어깨로 부터 떨어져 있는 유곽, 용뉴에 음관이 없는 점, 등도 조선시대 후기의 종임을 나타낸다.

중량 2,490kg, 두께 15cm, 높이 198cm, 입지름 138cm 으로 조선시대 후기 동종으로는 큰 편이며, 사인비구의 작품세계와 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역사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때 침입한 프랑스군이 강화동종을 약탈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무거워서 배에 싣지 못해 갑곶리의 토끼다리 근처에 놓고 돌아갔다고 한다.

강화산성 남문 동쪽의 종각에 있었고, 강화산성의 사대문을 열고 닫을 때 이 종을 사용했다. 김상용순의비 자리로 옮겼던 것을 1977년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정화사업으로 고려궁지의 강화부종각으로 옮겼다.

3.1절, 광복절, 제야에 33번씩 타종하던 것을 1995년1월에 몸통부분에 균열이 생기고, 치마부분이 떨어지자 타종이 중단 되었고, 1999년 12월에 강화동종과 모양과 크기가 같은 종을 강화부종각에 만들어 놓고, 강화동종강화역사관으로 옮겼다.

근처 볼거리

강화역사관 :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강화의 역사를 주제로한 전시관. ☎032-933-2178

갑곶리탱자나무 : 강화읍 갑곶리 강화역사관 옆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8호.

갑곶돈대 : 강화53돈대 중의 하나.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염하를 지키는 돈대. 사적 제306호.

갑곶리순교성지 : 강화읍 갑곶리천주교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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